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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가 떴습니다
아침 해가 떴습니다
2000-01-06 (Thu) 전대환 [2004-09-27 23:47]
전대환 내일신문
“우쒸 왜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나는 거야?”
얼마 전 어떤 초등학생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이 학생은 긴장과 기대 속에 새 천 년이 오는 순간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TV에서는 재야의 종소리만 울리고 기껏해야 폭죽이 몇 개 터지는 것으로 새 천 년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이 학생이 기대한 것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일들이었을 것이다. 2000년 1월 1일 0시가 되는 순간 갑자기 정전이 되고 TV도 꺼져버린다. 밖에서는 함께 경찰 차와 구급차 소리가 앵앵거리고, 어수선하게 사람들이 아우성을 지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곧이어 싸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들릴 뿐만 아니라 민방위훈련을 할 때처럼 유도요원이 길거리에 왔다갔다한다. 미리 준비해 두었던 촛불을 켜고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찾아 틀어보니 세계 각처에서 이른바 Y2K 문제 때문에 인류가 전쟁 아닌 전쟁을 겪고 있다는 뉴스가 각국의 특파원들로부터 들려오고...
그러나 정작 새 천년은 아무런 일 없이 다가왔고 1월 1일 아침에는 일부 흐린 지역도 있었지만 여느 때와 마찬가지의 아침해가 떴다. 호기심 많은 소년답게 뭔가 재미있는(?) 일을 기대하고 있던 이 학생은 실망과 허무를 느꼈을 것이다. 1월 1일 이후에도 몇 차례나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 우리 아들에게 Y2K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심정이 충분히 짐작이 된다.
이 학생이 그런 상상을 했던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지난 한 해 동안 각 기관마다 Y2K 노래를 불러 왔고, 언론들도 이에 덩달아 춤을 추었으니 어찌 아이들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사실 필자(筆者)도 그 날 밤 자정을 넘기기까지 전산실에서 비상 대기를 했었다. 하루에도 수십만 명이 접속하는 네트워크의 책임자이기 때문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런 일도 없으리라는 확신은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 나라에서 50만 명이나 Y2K 대비 비상 대기를 한다고 하는 통에 혼자 잠을 자고 있기가 솔직히 찜찜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행스러워 하는 것은 Y2K 대문에 돈을 10원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기관이든 그 기관의 전산 담당자가, 어느 소프트웨어든 그것을 만든 사람이 해당 기관이나 프로그램의 Y2K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다. 자기 기관의 컴퓨터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부분이 어디인지를 체크하고, Y2K 문제가 예상된다면 필요한 조치를 하면 그만인 것을 너무 요란하게 떠든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꽤나 우려했던 러시아나 동구권 나라들이나 제삼세계 나라들은 미국의 1/10 정도의 경비지출로 Y2K 위기를 넘기지 않았는가.
어쨌든 큰 탈 없이 이 시기를 넘긴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바이러스와 해킹에 Y2K 못지 않게 신경 쓸 때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해는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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