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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음기 대신 미소를...
경음기 대신 미소를...
1996-10-22 (Tue) 전대환 [2004-09-27 23:05]
전대환 KBS 제1라디오
제가 벌써 옛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연세 높으신 분들께는 송구스럽습니다만, 이차함수의 그래프에서 Y값이 증가하는 것처럼, 세월은 날이 갈수록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30여 년 전, 제가 어린 시절을 선산 이문리에서 보낼 때 선산 면내에는 포장된 도로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언젠가 서울서 손님 한 분이 까맣고 반들거리는 자가용을 타고 저희 집에 찾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물론 동네 아이들은 선망의 눈길로 그 손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른들이 이야기를 나누시는 중에 '아무개 딸은 서울 사는데, 학교 갈 때 자가용 타고 조르르 가고, 신발에 흙도 묻히지 않고 산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듣고 있으면, 산골 아이가 구중궁궐의 공주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시대가 그러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아니 10년 전만 하더라도, 자가용을 굴린다는 것은 어깨에 힘주고 다닐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자동차들이 얼마나 경음기를 울리고 다녔으면, 어머니들이 꼬마들에게 말을 가르치면서 자동차를 보고 '띠띠 빵빵'이라고 말해주기까지 했겠습니까? 요즈음도 시내에서, 어린아이건 노인이건 눈에 띄기만 하면 사정없이 경음기를 눌러대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아마도 그 분들은 어린 시절의 그 근사했던 자가용 꿈을 이룬 기분을 만끽하느라고 그렇게 하고 다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당시에는 사람보다는 자동차가 우선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가는 데마다 자동차 때문에 북새통을 이루고, 비오는 날이면 초등학교 앞이 온통 자가용 범벅을 이루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70년대 여성 근로자들이 부르던 노래 가사 중 이런 것이 있지요.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까 있을까... 하늘빛 자가용 타고 나는 화사한 옷 입고, 잘생긴 머슴애가 손짓하는 꿈의 나라..." 그러나 이제는 자가용 타는 것이 더 이상 꿈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자가용 굴리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이 시간 학교 근처를 통행하고 계시다면 기어를 2단 이하로 낮추시고 서행하시면서 어린 학생들을 쳐다보십시오. 얼마나 좋은 시절입니까? 자동차 앞을 가로막는 아이들이 있더라도 경음기를 울리지 마시고 잠시 멈추고 그 아이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십시오. 그러면 경음기 100번 울리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효과를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느라고 몇 분 늦어지는 시간은 커피숍이나 백화점에서 줄이십시오.
21세기를 향하여 우리가 준비해야 할 일이 많지만, 그 많은 일을 한꺼번에 다 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일이관지'(一以貫之)라 하셨습니다. 하나로 모든 것을 꿴다는 뜻이지요. 나라에서 정책을 세우는 일, 기업에서 사업 계획을 세우는 일, 가정에서 미래를 설계하는 일 등, 모든 일을 사람을 존중하는 정신에서 해 나가면 될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반만 년 전에 이미 '홍익인간'(弘益人間)을 내세웠습니다. 홍익인간을 실천하는 일! 경음기를 누르는 대신 살짝 미소를 짓는 일도 그 중 한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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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0-22 (Tue)
전대환 [2004-09-27 23:05]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