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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2009-04-15 (Wed) 마을지기 [2009-04-23 17:15]
전대환 내일신문
전대환 (대구참여연대 공동대표, 구미안디옥교회 목사)
교회력에서는 부활절이 지나면 머지않아 성령강림절이 온다. 성령강림절이란 초대교회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는 절기다. 그리스도교의 성령은 사람이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미하게 신호를 보내기도 하고, 맹렬한 불처럼 감동을 퍼붓기도 한다. 성령은 사람으로 하여금 끝까지 인내하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으로 성경에 묘사되어 있다. 성경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이 성령을 받아 기적을 일으키는 장면이 나온다. 사도들이 손을 얹으면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큰 소리를 지르면서 나갔고, 많은 중풍환자와 지체장애인들이 고침을 받기도 했다고 적혀 있다.
당시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마술을 부려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스스로 큰 인물인 체하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사도들이 하는 일을 보고는, 그들에게 돈을 내밀며 말했다. “내가 손을 얹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도록 내게도 그런 권능을 주십시오.” 이때 베드로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고 생각하였으니, 그대는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오.”
이 이야기를 함께 읽고 몇 사람이 토론을 한 일이 있다. 주제는 ‘우리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였는데, 성령 받는 것은 텍스트에서 이미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했으니까 그것은 논외로 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건강’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의료 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어서 더 오래 살지 않느냐는 반론에, 건강도 일정 부분은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데 대체로 공감했다.
그 다음 나온 의견은 ‘세월’이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세월을 돈으로 살 수는 없다는 것이었는데, 역시 반론이 나왔다. 예를 들어 열차를 타고 대구에서 서울까지 간다고 할 때, 일반 열차를 타고 가면 네 시간 가량 걸리지만, KTX를 타면 두 시간이면 가니까, 결국은 세월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랑’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사랑이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인데, 그것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지만, 이 의견도 큰 지지를 받지 못했다. 요즘 세상에 돈 없어 가난한 사람에게 사랑을 느낄 청춘남녀가 얼마나 있겠는가 하는 반론에 밀려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나온 의견이 ‘신뢰’였다. 여기에도 반론이 없지는 않았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찌그러진 고물 자동차를 타고 나오는 것보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나오면 더 믿음이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물음에, 대답 대신 고급 승용차를 보여주었다는 광고 문구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돈 많은 사람이 돈 많은 사람을 얼마나 신뢰하는가?’ 하는 질문에는 답이 마땅치가 않았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바로 신뢰, 곧 믿음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물론 다른 논리와 방증을 대며 이 논의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겠다.
최근 전직 대통령과, 그와 가까운 돈 많은 지인이 서로 말을 다르게 하고 있다. 수십 년간 다져온 두 사람의 신뢰가 깨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이제는 돈으로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으로도 회복이 어려워 보인다. 이 전직 대통령은 비록 인기는 많지 않았지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든든한 후원자들이 있었기에 용케도 임기 중의 ‘정치실험’은 그나마 의미 있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조차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차떼기를 해가며 수백억 원씩 모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에 대한 분노보다도, 그들이 받은 돈의 십분의 일도 안 되는 것을 받은 그에 대한 분노가 더 큰 것은, 애초에 사람들이 그에게는 ‘신뢰’라는 것을 두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신뢰’를, 그는 돈 ‘몇 푼’ 때문에 몽땅 잃고 말았다. 만일 그도 돈이 궁하지 않았더라면 신뢰를 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신뢰도 돈으로 챙길 수 있는 것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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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5 (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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