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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이 존중되는 사회
전문성이 존중되는 사회
1996-09-10 (Tue) 전대환 [2004-09-27 22:57]
전대환 KBS 제1라디오
애틀랜타 올림픽을 비롯한 몇 차례의 올림픽에서 레슬링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부쩍 올려놓았던 분이 있습니다. 요즈음 이 양반이 흔히 하는 말로, '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분 뿐만 아니라 올림픽 등 큰 행사를 마치면 한 사람씩의 영웅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황영조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영웅이 탄생하는 것을 마다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렇게 언론에 의해 이른바 '띄워진' 사람들이 자기의 전문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끝까지 발휘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은 참 딱한 노릇입니다. 개인을 들먹여서 안 된 일이기는 합니다만, 레슬링 해설가 이 모 선생은 레슬링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주부 프로그램, 퀴즈 프로그램 등의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신문, 라디오 등 눈만 돌리면 이 '빠떼루 아저씨'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가끔 한 번씩 나오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하겠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진정 이 분을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사회가 이런 분을 이런 식으로 내몰아서는 곤란합니다. 수차례의 올림픽을 통해서 이분이 얼마나 훌륭한 레슬링 해설을 해 주었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이 분은 레슬링 분야의 탁월한 전문가입니다. 그 분야에서 더 좋은 결과를 낳도록 아껴 주어야 합니다. 황영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금메달을 딴 이후 황영조는 거의 전 시간이 연일 인터뷰와 방송 출연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마라톤 분야에서 훨씬 더 큰 빛을 나타냈을 것입니다. 역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겠습니다만, 근래 연기자들을 비롯한 연예인들이 정계(庭階)에 들어간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정치인으로서 성공한 예는 거의 없습니다. '국회의원을 한 번 했다'는 사실이 그들의 인생에서 얼마나 좋은 이력(履歷)이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 사람의 탁월한 연기자로 남아 있는 것이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연기자이면서 가수 활동을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자기 분야 밖의 일에 손을 대는 경우도 흔히 있습니다. 한 분야를 포기하고 확실하게 다른 직업인으로 변신한 사람들 중에는 일부 성공했다고 평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양다리를 걸친 경우는 성공한 예가 거의 없습니다.
자기 분야에 한평생을 바치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액세서리처럼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일평생의 정열을 쏟아 붓지 않고서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남의 직업이 아름다워 보이지만 막상 그 안에 들어가 보면 남모르는 어려움이 다 있습니다. 한평생 연구나 실험에 몰두하는 사람, 한평생 택시 운전을 하는 사람, 한평생 남의 머리를 손질해 주는 사람, 한평생 연기에 몰두하는 사람, 한평생 교단에 서서 가르치는 사람... 이렇게 한평생 자기 분야에 전념하는 이런 분들이 21세기를 열어갈 분들입니다. 다른 일로 인해서 나의 전문 분야에 방해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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