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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지 않은 세상
바쁘지 않은 세상
1996-09-03 (Tue) 전대환 [2004-09-27 22:56]
전대환 KBS 제1라디오
"식사하셨습니까?" 하는 인사를 너나없이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많이 바쁘시지요?" 하는 말이 인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저 역시 그런 인사를 많이 듣습니다만, 들을 때마다 '그러려니' 하기는 하면서도 왜 그런 인사가 있어야만 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가기도 합니다. 바빠야 사람 대접을 받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정말 많이 바쁜 것 같습니다. 직장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주부들도 집으로 전화해서는 통화하기가 힘든 실정입니다. 이제는 가정의 전화번호보다도 무선호출기나 휴대전화 번호를 더 많이 이용해 가는 추세입니다. 무선호출기나 휴대전화를 이용하지 않고 집에 앉아서 전화를 받는 사람은 괜히 '할 일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 것 같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들 바쁠까요?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의 근로 시간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쁘다는 사람들의 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갑니다. 근로 시간이 줄어들면 여유가 더 생겨야 마땅한데도 현실은 그 반대입니다.
현대인들이 바쁜 것은 우선, 마음이 바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바쁘다는 말을 한자에서는 '망(忙)' 자를 씁니다. 이 글자를 뜯어보면 '마음 심(心)' 변에 '망할 망(亡)' 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뜻이겠지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은 그렇게 바빠하지 않습니다. 저를 보고도 다른 사람들은 무척 바쁜 사람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오히려 저 자신은 그렇게 바쁘지 않습니다. 예정된 시간에 예정된 일을 하고, 예정된 사람을 만나고, 예정된 휴식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요즈음은 컴퓨터가 복잡한 일을 많이 처리해 주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이 더욱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쁜 또 다른 이유는 교통 문제 때문인 것 같습니다. 교통량이 많아서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차 세울 곳이 없어서 주차할 곳을 찾느라고 시간을 보내고, 자동차가 고장이 나면 수리하느라고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렇게들 바쁘다고 하면서도 주말의 예식장 근처에는 사람들과 차량으로 범벅이 됩니다. 바겐세일 기간의 백화점 근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정작 교양강좌를 하는 곳이나, 봉사활동을 하는 곳에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방송국에서도, 쇼 프로그램 녹화 때는 방청석이 모자라지만, 교양 프로그램에는 방청객을 동원해 와야 하는 때도 있다고 듣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바쁜 원인은 생산적인 일보다는 비생산적인 일에 있다고 보아도 좋겠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방식에 한 몫 끼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의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지만, 왜 내가 바빠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바쁜 것만이 능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여유 있는 미래를 만들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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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09-03 (Tue)
전대환 [2004-09-27 22:56]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