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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날리는 자원
재미로 날리는 자원
1997-04-08 (Tue) 전대환 [2004-09-27 23:28]
전대환 KBS 제1라디오
요즈음 우리는 <최악의 불경기>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장사 안 된다고 하는 말은 삼대 거짓말 속에 들어간다고는 하지만, 오늘날의 경기는 장사 안 된다는 말을 엄살로만 받아들이기에는 정도가 심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성업중인 업종이 있습니다. 바로 역술(譯述) 관련 업종입니다. 한국역리학회 등 관련 단체들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점술가와 무속인 숫자는 10만 명을 훨씬 넘는다고 합니다. 여기에 역학이나 풍수 등에 흥미를 가지고 공부하는 일반인까지 포함하면 엄청난 사람들이 점술을 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점술가의 숫자와 비례해서 이른바 복채의 규모도 천문학적 수준일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천리안 하이텔 등 PC통신망에도 평균 대여섯 개의 점술 서비스가 성업중인데, 대개 1분당 50원 이상의 요금을 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서비스는 한 달에 22만 명이나 접속하는 등 성황을 이루고 있습니다. 전화정보사업인 700 서비스에서도 현재 60여 개 번호가 영업 중입니다. 또 역학 종합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컴퓨터로 사주 궁합 등을 보아 주는 체인점도 전국에 40여 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일은, 각국의 원수들과 이른바 퍼스트 레이디들도 중대사를 결정할 때 역술인들의 조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고 보면, 사람이란 약한 동물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이 여자 점성술사에 국정을 의존한다든지, 중국의 등소평이 기공사의 도움으로 연명해 왔다든지, 미국의 힐러리 여사나 영국의 왕세자비 다이애나가 이혼 전에 심령치료사의 도움을 받았다든지 하는 일들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니 일반 서민들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너무나도 사정이 어려워서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점집을 찾아간 사람이, "조상 묘를 잘못 써서 살이 끼었으니, 살을 풀지 않으면 당신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등의 말을 들으면 점술가의 처방이 아무리 비싸다고 한들 그 말에 넘어가기 십상일 것입니다.
사주니 궁합이니 택일이니 점이니 하는 것들은 사실 대부분 생년월일과 관계되는 것들인데, 역술에서 사용하는 생년월일은 하루를 열 둘로 나누어서 따져 들어갑니다. 이를 일 년으로 보면 사주는 4,300여 유형이 나옵니다. 이것을 60갑자로 계산하더라도 259,000여 정도의 유형밖에 안 됩니다. 세계 60억의 인구를 가능한 사주로 나누면 2만3천 명 정도가 같은 운명을 타고나야 한다는 계산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런 것들을 "재미로" 보는 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한낱 <재미로> 생각하기에는 물질적 정신적 피해가 너무나 큽니다. 건강한 미래 사회를 향하여 나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이런 것도, 제거해야 할 <거품>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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