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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놀음
숫자 놀음
1997-03-18 (Tue) 전대환 [2004-09-27 23:25]
전대환 KBS 제1라디오
지난 해 10월, 한 신문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제목부터가 "여성의 54%가 외도 욕구 느낀다"는 것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의 신경정신과 교수 한 분이 발표한 논문을 소개한 기사로서, 논문의 주제는 "부부간의 성 윤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기혼여성 51명과 미혼여성 11명을 조사했더니, 전체 여성의 54.8%가 외도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중 25명은 "외도하고싶은 욕구는 있지만 참는다'고 답했고, "기회가 닿으면 할 수도 있다"는 응답자가 8명이었고,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해 보겠다"고 한 사람도 한 명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한 <54.8%>라는 숫자가 사람들의 생각을 묘하게 만들어 주는 말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남성들은 이 숫자를 의심 없이 믿을 뿐만 아니라, 여성을 볼 때마다 "저 사람도 외도하고 싶은 욕구를 가진 사람이려니" 생각할 것입니다. <54.8%>라는 수치가 일단은 확률상 반(半)을 넘긴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류의 조사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생각해 봅시다. 첫째는 응답의 진실성 문제입니다. 이 보고에서는 그냥 <외도욕구>라고 했지만, <외도욕구>도 상대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인간성을 상실한 치한을 대상으로 생각했을 때와, 매너 있고 능력 있고 잘생긴 남자를 대상으로 생각했을 때의 결과는 현저하게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기분이란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조사 대상자의 응답 시기도 문제가 됩니다.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부부간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삶에서 행복을 느낄 때가 있는가 하면 때에 따라서는 만사에 흥미가 없어서 새로운 일에 대한 욕구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것 하나로도 통계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둘째는 조사 대상의 타당성 문제로서, 이분이 조사한 62명의 여성이 우리나라 전체 여성을 대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대상을 아무리 골고루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아니면 무작위로 추출했다고 하더라도 대표성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셋째, 만 보 양보해서, 이 조사 결과를 전적으로 믿어준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45.1%의 여성은 "외도 욕구가 전혀 없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설령 99.9%의 여성이 외도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존재한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통계 숫자를 어림잡아 <대부분의> 여성이 그러려니 생각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현대 사회를 일컬어 이른바 정보화 사회라고 합니다. 홍수같은 정보 속에는 통계 수치가 차지하는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통계든지 <통계>는 단지 참고용일 뿐이지, 절대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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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3-18 (Tue)
전대환 [2004-09-27 23:25]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