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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환 칼럼] 정치의 격(格)
[전대환 칼럼] 정치의 격(格)
2012-06-11 (Mon) 마을지기 [2012-06-11 15:26]
전대환 내일신문
[전대환 칼럼] 정치의 격(格)
전대환(한울교회 목사 | 구미 YMCA 이사장)
기사입력 2012-06-11 15:00
우리나라 정치판이 복잡하다. 예수나 붓다 등 인류의 존경을 받는 성현들이 환생해서 나타난다고 해도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국회 개원식 때 예수를 초청해서 연설을 듣기로 했다면 예수는 뭐라고 말할까. "여러분 서로 사랑하십시오.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무엇이든 달라고 하면 주고, 오리를 같이 가자고 하면 십리까지 같이 가주십시오." 일부 고개를 끄덕이는 의원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콧방귀를 뀌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붓다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도 나쁜 말은 아니지만, 마음에서 원수라는 허상을 없애십시오. 원수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아집을 버리고 자기 안에 있는 부처에게 귀의하십시오." 공감의 뜻으로 일부 합장을 하는 의원도 있겠지만 잠자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노자를 초청했다면 어떨까. "여러분, 웬만하면 정치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나섰다고 하더라도 가급적 뒤로 물러나서 있으십시오. 모름지기 백성을 섬기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선한 사람도 선하게 여기고 선하지 않은 사람도 선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런 자리에 공자가 빠질 수 없다.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만들지 말라, 선하지 않은 사람도 선하게 여기라 하지만 그것은 현실과 괴리가 있습니다.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제대로 아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어진 사람은 남을 좋아할 줄도 알고 미워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선한 것은 선하다고 하고 악한 것은 악하다고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절대적 진리란 존재할 수 없다
그제야 의원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선한 것이고 무엇이 악한 것인가?' 이런 생각은 잠깐, 이내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 우리 당의 정책과 주장이 옳은 것이야.'
공자의 사상이 힘을 발휘했던 사회에서는 정쟁이 유난히 심했다.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옳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토론이 치열하게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당파도 많았다. 조선시대에 당파가 많았던 것을 폄훼하려는 시각이 일부 있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때만큼 정치논쟁이 활발했던 시절도 없었던 것 같다. 낱말 하나의 개념을 두고도 학파가 갈릴 정도였으니까.
그렇다면 정말 궁금하다.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가. 원효대사가 당나라 유학길을 떠났다가 도중에 되돌아온 이야기를 다 알 것이다. 밤중에 너무 목이 말라 바가지의 물을 달게 마셨는데, 아침에 밝을 때 보니 해골바가지였더라, 아하, 진리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것이로구나,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같은 물을 두고도 그것을 달게 마실 수도 있고 구역질을 할 수도 있으니 그 물을 선하다고 해야 할 것인가 악하다고 할 것인가.
선과 악의 문제 때문에 곤욕을 치른 대표적인 사람이 갈릴레오 갈릴레이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옹호하다가 종교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는 '악한 주장'을 굴욕적으로 철회하고 나서야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런데 갈릴레오가 죽을 때쯤 태어난 뉴턴은 감히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주장을 했지만, 갈릴레오보다 더 '위험한'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종교 재판에 회부된 적이 없다. 반세기 동안 시대의식이 성숙했기 때문이다.
뉴턴이 죽을 때쯤 태어난 임마누엘 칸트는 시대의식의 결정타를 날렸다. 생각이라는 것은 사람이 현상을 입력받아 뇌에서 사고과정을 거친 다음 각자의 판단에 따라 출력된다는 것인데, 뭉뚱그려 말하면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는 절대적인 진리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효의 생각을 서양철학의 방식으로 설명한 셈이다.
생각은 생각일 뿐, 선도 악도 아니다
칸트 이후 사람의 생각을 두고 선이니 악이니 하는 것은 미개인이나 하는 '짓'이 되어버렸다. 사상의 자유가 안착이 된 것이다. 최근 일부 인사들이 국회의원의 사상을 검증해서 '악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배제시키자고 하는 모양인데, 어떤 방법으로, 무엇을 기준으로 그리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교황청이 갈릴레오에게 '굴욕맹세'를 받아냈던 것처럼 하자는 것일까. 설마, 농담이겠지. 재미있다고 농담 너무 심하게 하면 정치의 격(格)이 떨어지니까, 남의 생각을 가지고 '악'으로 몰려고 하는 생각은 제발 자제해주기 바란다. 생각은 생각일 뿐, 선도 악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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