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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환 칼럼] 심판의 계절
[전대환 칼럼] 심판의 계절
2012-03-27 (Tue) 마을지기 [2012-03-27 16:08]
전대환 내일신문
[전대환 칼럼] 심판의 계절
전대환(한울교회 목사 | 구미 YMCA 이사장)
기사입력 2012-03-27 15:57
어머니는 떡 접시가 놓인 곳마다 다가와 두 손을 둥그렇게 모아 마치 허공의 모든 것을 끌어 모으듯 합장을 한다. 어머니의 뒤를 따르며 봉순이 언니도, '나'도 그렇게 한다. 어린 꼬마 아가씨가 보니 어머니는 식구들의 건강과 안녕, 오빠의 중학교 입시, 경제적인 여유를 위해 기도하는 것 같았다. 임신한 봉순이 언니는 무사히 출산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이 따뜻한 행복을 깨지 말아달라고 했을 것이다. '나'의 독백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나는 그저 두 손을 모았을 뿐이었다. 나는 아직 기도할 줄 몰랐다. 고난이 오기 전에 아직 기도는 시작되지 않는 법이니까." 공지영의 소설 '봉순이 언니'에 나오는 내용이다.
어머니는 세상풍파를 많이 겪었으니까, 기도 제목이 많다. 봉순이 언니도, 뱃속의 아이가 세상에 나와도 환영을 받지 못 할 게 자명한 상황이고, 아이도 자신도 그저 불안하기만 한 처지니, 기도가 저절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어린 '나'는 어머니와 봉순이 언니가 기도를 하니까 그냥 따라서 손을 모을 뿐이다. '나'에게는 아직 '고난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에 병이 생겼을 때, 경제사정이 너무 어려울 때, 자식이 속을 썩일 때, 누가 나를 심하게 괴롭힐 때… 등등, 이것만 아니면 내게 무슨 걱정이 있을까 생각될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도를 하게 된다. 그 대상은 종교적인 절대자일 수도 있고, 자연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일 수도 있다. 기도든 다짐이든, 인생항로의 방향키를 잠시라도 놓지 않아야 삶이 온전하게 유지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여당이 이 대통령과 담 쌓는 이유는
조금만 편해져도 우리는 방향감각을 잃어버린다. 그러다가 뼈아픈 고난이 오면 그제야 다시 원인을 찾고 대책을 찾고 앞을 살핀다. 그걸 탓할 필요는 없다. 고난을 겪으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지, 노자 말씀처럼 병을 병으로 아는 것은 병이 아니니까(夫唯病病 是以不病).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선거전이 불이 붙었다. 한 쪽에서는 '정권심판'을 외치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과거 이야기는 그만하고 미래에 대해서 논하자고 받아친다. 집권 5년차에 치러지는 총선거라면 이슈는 당연히 현 정권에 대한 평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당 쪽 후보자들의 홍보자료를 보면 '지난 4년간 우리는 이렇게 일했습니다. 이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 우리를 선택해 주십시오!' 하는 내용은 거의 없다. '돈은 많이 썼지만 4대강 공사가 완료돼서 우리 삶이 이렇게 행복해졌습니다!' 하는 문구가 적어도 몇 개는 나올 줄 알았다. 여당이 현 정권의 치적을 내세우기는커녕 오히려 대통령과 담을 쌓는 데 더 열심이다.
이것은 여당조차도 지난 4년간의 집권세월을 불편해하다는 뜻이다. 궁여지책으로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이름도 바꾸었다. 음식점으로 치자면, 음식 맛도 없을뿐더러 요리에 이물질이 섞여 나오는 등 몇 년 동안 사고를 친 게 많아 손님이 다 떨어질 지경에 이르자 간판을 바꿔단 것이다.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보니 주인도 그대로고 주방장도 그대로고 종업원도 그대로다. 음식재료 공급처도 변함이 없다. 이제는 경영자가 이명박이 아니고 박근혜가 될 것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그 둘이 동업자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가 있어서 위기에 처한 음식점이 문을 닫지 않고 다시 영업을 하려면 지난 세월 동안 무엇을 잘못했는지 스스로 밝히고 그 원인규명을 철저히 해서, 이제는 달라질 것이라고 하는 확신을 고객들에게 심어주어야 하는데, 외벽 페인트칠과 간판교체만 한 채 손님 모으는 이벤트를 하고 있으니, 그 음식점 사람들의 친척들이나 동향인들조차도 흔쾌히 그 집을 찾아가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기도 시작하는 심정으로 투표장 갈 것
고난이 오기 전에는 기도도 시작되지 않지만, 심판도 시작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난 4년간 충분한 고난을 겪었다. 천문학적 돈을 4대강에 돈을 쏟아 부은 결과는 수질악화와 서식동물 감소로 돌아왔다. 정권 수뇌부에서 민간인들을 사찰해왔다는 정황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피부로 느끼는 경제상황도 최악이다. 심판이 시작될 조건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고난을 겪은 사람이 기도를 시작하는 심정으로, 국민들은 투표장에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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