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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환 칼럼] 미운 놈 다루기
[전대환 칼럼] 미운 놈 다루기
2012-05-29 (Tue) 마을지기 [2012-05-29 15:43]
전대환 내일신문
[전대환 칼럼] 미운 놈 다루기
전대환(한울교회 목사 | 구미 YMCA 이사장)
기사입력 2012-05-29 14:33
"옛날 홍문잔치에서 장수 하나가 촛불이 잠깐 꺼진 틈에 번쾌의 여자의 젖을 만졌소. 여자가 그 남자의 투구 끈을 끊었소. 살짝 그 이야기를 들은 번쾌는 촛불을 켜지 못하게 하고 모두 투구 끈을 끊으라고 말했소. 손목 한번 잡은 것, 젖 한번 쥐어 짠 것, 그것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소. 그것 때문에 목숨을 버려야 하오?" 서정인의 소설 '모구실'의 한 대목이다.
상관의 여자와 옷깃만 스쳐도 무사하지 못할 판에, 가슴까지 만졌으니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게 됐다. 그러나 비명을 지르거나 사건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고 남자의 귀에 대고 살짝 말해준 여자도 현명했고, 모든 사람의 갓끈을 자르도록 한 번쾌 장군도 보통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잘못을 저지른 이는 자신의 죄를 알고 있을 테니, 순간적으로 발휘된 번 장군의 아량을 보았을 것이고 그가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도 깨달았을 터이다.
엊그제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한 대위가 군 형법상 '상관 모욕죄' 혐의로 군 검찰에 기소됐다는 것이 알려졌다. 트위터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죄다. 그는 지난해 12월 트위터에 "가카 이 XX 기어코 인천공항 팔아먹을라고 발악을 하는구나"라는 글을 포함해서 BBK 의혹, 내곡동 땅 등과 관련한 비판글을 올렸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밀어붙이는 것은 민주주의에 어긋난다. 인내심을 가지고 주민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아량 보여줘 무서움 알린 번쾌 장군
사회망서비스(SNS)에 이런 글들이 한두 개 올라오는 것도 아니고, 그런 글을 쓰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니, 그가 민간인이었다면 아무도 관심을 안 가졌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가 현역 장교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군인 신분임을 알리지 않고 트위터에 글을 올리다가 강정 해군기지 건설 문제로 한 여대생과 논쟁을 벌이던 중 자신을 '현역 군인'이라고 밝혔고 여대생은 대위의 글을 갈무리하여 육군 기무사에 신고함으로써 일이 커졌다. 여대생을 비난하거나 대위를 나무랄 생각은 없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예전 같으면 또 모르겠는데,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2009년에 국방부는 '상관' 개념에 대통령을 적시했을 뿐만 아니라 '정보통신망 등에서 상관을 비방해서는 안 된다'고 군인복무규율을 개정했다. 그 이전에는 상관모욕죄에 대통령을 포함시켜 처벌한 사례는 단 한건도 없었다고 한다. 복무규정에 그렇게 적혀 있으니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통령이 대위의 상관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대통령 비판이 '모욕'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상위법인 군형법과 헌법정신을 두고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군형법 64조에는 "상관을 그 면전에서 모욕한 사람"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상관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 "공연히 거짓 사실을 적시하여 상관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은 처벌 받도록 되어 있다. 대위의 행동을 사실 적시나 거짓사실 적시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고, "문서, 도화(圖畵) 또는 우상(偶像)을 공시(公示)하거나 연설 또는 그 밖의 공연(公然)한 방법으로 상관을 모욕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고 되어 있는 2항이 문제가 될 것 같다.
그런데 '모욕'이란 말을 곱씹어보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막걸리보안법'이 위세를 떨치던 유신시대라면 모를까,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서 대통령이 이 일로 어떻게 모욕을 당했는지 입증을 해야 대위의 처벌이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것이다. 해결은 간단하다. 대통령이 "나는 이 일로 모욕받지 않았다!" 한 마디만 하면 된다. 본인이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다는데, 모욕을 줬다고 제삼자가 입증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소인배 아님을 보여주면 된다
현 정권 들어 이른바 'SNS보안법'에 걸려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사례가 부쩍 많아졌다. 트위터 아이디(2MB18nomA)가 욕설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접속차단당한 일도 있고, 무리한 법적용으로 곤욕을 치르다가 무죄선고를 받은 예도 많다. 대부분 대통령과 관련된 일이다. 대통령 스스로 소인배가 아니라는 것만 보여주면 이런 일로 국격 떨어지는 소리는 안 들릴 것이다. '미운 놈'에게 떡을 하나 더 주지는 못할망정 들쑤셔서 좋을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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