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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이 살아 있는 민족이나 나라가 역사를 찬란하게 만들어낼 수 있음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이 언어학자들이나 국어학자들이, 또는 뜻있는 식자들이 바른 말 쓰기를 남달리 강조하는 연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우리의 언어는 공해 속에 찌들어 있는 듯하다. 심지어는 아름답고 멋있는 언어 문화를 선도해 나가야 할 방송에서조차 우리말의 오염 현상을 많이 보게 된다.
목사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버금가는 권위와 비중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목사의 설교가 무슨 학술 강연이나 세미나와 같이 어려운 단어들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예수님은 쉽고도 편한 말을 사용하심으로써 누구든지 알아듣고 삶의 방향을 돌리도록 하셨다.
쉬운 설교를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어떤 경우에는 코미디언이 원맨쑈를 하는 것인지 목사가 설교를 하는 것인지 분간이 잘 안 가는 경우도 없잖아 있다. 게다가 일반인들도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쓰기를 꺼려하는 속어들이 부흥 설교 등에서 예사롭게 등장하기도 한다.
목사가 가진 '설교'라는 어마어마한 무기는 신도들의 신앙 생활 뿐만 아니라 언어 생활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목사는 언어, 특히 설교 언어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기독교와의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우리말을 바로 알고 바로 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 중의 하나가 박갑천 선생이 쓴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서울: 을유문화사, 1995)이다. 저자 박갑천 선생은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 등 주로 신문사에서 논설위원 등으로 일했던 분이다. 그는 또 국어심의회 표기법 분과위원과 국어연구소 외래어용례 심의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우리말 바로 쓰기에 대한 인식과 그에 따른 풍부한 경험을 갖춘 이이다.
이 책은 107 가지의 우리말에 대한 어원(語源)과 현대적인 쓰임새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낱말들, 예를 들어 가르치다, 근사하다, 꼬마, 꽃, 노래, 대머리, 머슴애, 미앙인, 바보, 사모님, 어른, 제왕수술, 하늘·하나님 등에 대한 이 책의 내용을 읽을 때 '아하!' 하고 무릎을 칠 일이 여러 번 생긴다.
앞에서도 언급했거니와 말에 대한 목회자의 영향력은 신도들을 향해서는 아나운서 못지 않게 크다. 같은 내용이라도 곱고 아름다운 말을 선택하여 설교할 때 그 설교는 영적인 은혜를 끼칠 뿐만 아니라 신도들의 정신적 정서 함양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그 결과 신도들은 비신자인 이웃들을 향해서도 삶의 모범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설교자들에게 몇 가지 도움을 준다.
이 책은 말의 근원을 찾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가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서울"이라는 항목을 찾아보면, 서울이라는 말이 어떻게 홀이름씨(고유명사)와 두루이름씨(보통명사)로 함께 쓰이는지를 설명하면서, 신라 향가인 처용가(處容歌)에서 서울이라는 말의 근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의 쓰임새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어떤 변천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의 '서울'이라는 말이 되었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우리말인 '서울'이 일본의 침략으로 인하여 '경성부'(京城府)로 바뀌게 되었고, 우리가 경부선(京釜線)이네 경인선(京仁線)이네 하고 흔히 쓰는 말이 일제의 침략을 인정하는 우스운 꼴이 된다는 지적까지 덧붙이고 있다. 겉으로는 일제의 잔재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일제가 붙인 말을 우리말처럼 인정하고 있는 현실을 이 책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다. 또한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만들어진 말들도 소개되고 있어, 말의 변천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언어를 바르게 선택하여 사용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는 당연히 맞는 말인 줄 알고 쓰지만 전혀 엉뚱하게 쓰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컨닝, 걸 헌팅, 골인, (야간 경기를 말하는) 나이터, 백넷, 샤프펜슬, 슈크림, 스프링 코트, 올드 미스, 포볼, 호치키스 등, 전혀 국적 없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거리낌 없이 쓰이고 있다. 이런 표현들이 어떻게 해서 잘못 쓰이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써야 바른 말이 되는지를 이 책은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우리의 언어 습관에서 어색한 점으로, 존칭의 의미로 '님'자를 너무 많이 쓴다는 지적을 볼 수 있다. 해방 전에 나온 책만 보아도 "장군! 소장이 나가서 적의 목을 베어 오리다" 하면 족했던 것이 이제는 반드시 "장군님!..."이라 해야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장군이나 목사나 장로나 직책을 이름 뒤에 붙이는 것은 그 자체로도 상당한 높임의 뜻을 담고 있다. 그런 까닭에 남에게 자신을 전할 때 '아무개 목사'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인 셈이다.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 교회 목사 아무개입니다' 쯤이 적당할 것이다. 그리고 주보의 교회소식에 보면 '아무개 장로님께서 승진을 하셨습니다' 하는 등의 표현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냥 '아무개 장로가' '우리 교회 목사가...' 하든지 정 섭섭하면 '아무개 집사께서...' 정도만 해도 최상의 존칭이 되는 것이 본디의 우리말이다.
교회사를 돌이켜 보건대, 동서방 교회의 분열을 시발로 해서 서방 교회가 구교와 신교로 나뉘고 개신교가 각 교파별로 나뉘고 같은 교파 안에서도 기하급수적인 핵분열을 하는 오늘의 교회의 모습이 어찌 하나님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가. 그런데 문제는 교회의 분열 역사에 있어서 '말'이 크게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성찬론 논쟁에서 "임재설"이나 "화체설"이니 "기념설"이니 하는 제각각의 표현들이 따지고 들어가 보면 결코 그것들이 교회 분열의 원인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적 대립을 계속해 오는 것은, 피차가 상대의 말에 대해 전향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말이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우리말에서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듯이, 말은 쓰기에 따라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고 뺨을 맞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이런 면에서 목회자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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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2-01 (Fri)
전대환 [2004-09-27 21:56]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