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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구미
박정희와 구미
1995-11-08 (Wed) 전대환 [2004-09-28 00:12]
전대환 내일신문
어떤 집에 강도가 들었다. 본디 강도(强盜)란 주인의 뜻과는 무관하게 드는 법이다. 돈을 빼앗기 위해서이건, 사람을 해치기 위해서이건, 자기가 기분이 나빠서 아무 집에나 불쑥 들어갔건, 그 집이 미워서 들어갔건 강도의 의중이 무엇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강도는 강도일 뿐이다. 강도가 그 집에 들어가서 무엇을 했느냐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강도는 역시 강도일 뿐이다. 그 집 사람들에게 칼을 들이대고 강제 노역을 시켜 설사 그 집이 그 이전보다 더 잘 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어찌 강도가 강도 아닐 수 있는가? 일제 시대의 김구 선생은 “내 어머니가 비록 문둥이라도 너희 어머니보다는 내 어머니가 훨씬 좋다”고 하며, ‘일본에 협조하면 더 좋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지 않으냐’는 감언이설을 물리쳤다. 아무리 강도가 잘 해 준다고 한들 예나 지금이나 강도는 싫은 것이다. 총으로 나라를 빼앗아 권좌(權座)에 앉은 인물이 직책이 대통령이라 해서 결코 강도보다 나을 바가 없다. 우리나라의 근대 정치사(政治史)에서 군사 쿠데타의 시조는 누가 뭐래도 박정희(朴正熙)다.
박정희 전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군사정권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까지 이어졌다. 전두환씨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선임자(先任者)보다 더 악독한 수법으로 나라를 빼앗았다. 전두환씨와 같이 일을 모의했던 노태우씨는 아무 짓도 안한 척 뒤에 숨어 있다가 전씨의 비호 아래 대통령에 턱걸이했다. 전씨는 국내에서 국민의 매를 맞은 최초의 전직 대통령이 되었고, 노씨는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는 최초의 전직 대통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우리 정치사의 얼룩진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그래도 박정희가 아니겠느냐”는 목소리가 슬금슬금 나오고 있다. 모 일간지에서 여론조사를 하여 박정희(朴正熙) 김영삼(金泳三) 이승만(李承晩) 전두환(全斗煥) 장면(張勉) 노태우(盧泰愚) 중 박정희씨가 67.3%의 지지를 받았다고 보도하기까지 했다. 대부분 정통성이 없는 사람들을 두고 인기투표를 시킨 언론사도 문제이지만 그 결과를 놓고 “그것 봐라, 그래도 박정희다” 하며 ‘박정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드는 사람들이 더 문제다.
이와 같이 박정희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것은 이른바 ‘박정희 치적’이다. 보릿고개가 없어지고 초가집이 없어졌다는 것이 주요 논지(論旨)다. 그러나 한 나라의 운명을 어찌 보릿고개와 초가집의 존재 여부로 평가할 수 있는가. 한 사람을 건강하다고 할 때는 그의 정신이 올바르고 그의 몸이 튼튼할 뿐만 아니라 전인적(全人的)인 균형이 잡혀 있어야 한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도덕성이 확립되고 경제적으로 윤택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나라라 할 수 있다. 경제 논리(論理)까지도 가지 말고 수출액과 국민총생산만 따지면 박정희 시대에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신상태도 흐리멍텅하고 몸의 균형도 잡히지 않은 채 살만 찐 비만아(肥滿兒)와 다를 바가 없다. 겉으로 보기에 살이 쪄서 아이가 컸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조금만 운동을 해도 허덕거리고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인간이 어찌 인간일 수 있는가. 박정권 때 살만 찐 우리 나라가 이제 후유증에 몸살을 앓고 있다. 박정권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인 성수대교가 힘없이 허물어졌고, “좀더 크게, 좀더 빨리” 하면서 외형만 괜찮으면 그만인 건설 관행이 급기야는 대형 백화점까지 무너지는 사태를 몰고 왔다. 앞 뒤 가리지 않은 무작정의 공업화(工業化) 결과, 우리의 환경은 소생 불능의 상태까지 가고 말았다. 과거를 깨끗하게 청산할 줄 모르는 우리의 역사 의식이 전두환씨에 이어 노태우 비자금이라는 똑같은 전철을 되풀이하고 있다. 머리는 물론 근육 속에도 아무것도 든 것 없이 살만 찐 ‘박정희 경제 치적’의 결과가 이런 것이다. 살만이라도 제대로 쪘으면 그나마 다행이련만, 일부분만 살이 찌는 분배 정의의 상실 현상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날, 박정희 망령이 일부 정치인들을 움직이려 하고 있다. 박정희의 출생지인 ‘구미’라는 지역을 의식해서인지는 몰라도 지난 6.27 지방 선거 때도 각 후보들은 여야(與野) 할 것 없이 박정희 감싸 안기에 열을 올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도 일부 인사들이 아무런 정책이나 역사적 당위성 없이 박정희만을 내세워 우리 지역에 출마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진정한 뜻에서 구미의 자존심을 세워야 할 때다. 이것저것 살필 것 없이 우리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박정희’가 과대포장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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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1-08 (Wed)
전대환 [2004-09-28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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