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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살아만 다오
제발 살아만 다오
1996-01-03 (Wed) 전대환 [2004-09-28 00:19]
전대환 내일신문
다사다난(多事多難)!
해마다 신물이 나도록 들어서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 말이지만, 지난 해를 돌이켜 보면서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을 찾기 어렵습니다. 실로 엄청난 한 해였습니다. 백화점이 무너져 내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생명을 잃은 어마어마한 일이었지만 아직까지 마무리되지 않고 있는 우리들 모두의 상처입니다. 이 일에 가려서, 평상시 같으면 대형 사고였을 다른 사고나 사건들은 도무지 떠오르지도 않을 만큼의 아픔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지난 해에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서 있었습니다.
지난 해에는 또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구속 수감되는 사건을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만, 특히 저에게 있어서는 16년 동안의 길고 긴 기도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1979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저격당했을 때, 깨어 있던 사람들은 ‘이제야 우리 나라에도 민주 사회가 오게 되었다’고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한국 사태에 하나님이 개입하셨다”며 감격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스승 한 분은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놈들아. 너무 좋아하지 마라. 마귀 한 놈이 물러가면 뒤에는 일곱 마귀가 오는 법이다”고 했습니다. 그 해 겨울, 저는 설마 그런 일이 있으랴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980년 봄이 되어 우리는 일곱 마귀의 실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두환 물러가라!”고 목청을 높이며 데모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 전두환이라는 존재를 모르던 일반 시민들은 대학생들을 ‘미친 놈들’이라고 힐난했습니다. 전두환이가 어떤 놈인데 물러가라고 난리냐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80년의 봄은 5.17과 5.18이라는 치떨리는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흑암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함께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전두환 마귀를 쫓아 주십사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마귀 정권은 얼굴만 노태우로 바꾼 채 13년을 지속했습니다. 드디어 16년 전의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현 정권이 예쁘고 밉고를 떠나서, 저는 이제 솔직히 다시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한국 사태에 하나님이 개입하셨다고 말입니다. 지난 해는 그런 한 해였습니다. 한 편으로는 우리나라의 망신일 수 있습니다. 찢어지고 뜯기고 피가 나고 하는 만신창이입니다.
구약성서에서 에스겔이라는 예언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가다가, 피투성이로 버둥거리는 너를 보고, 피투성이로 누워 있는 너에게, 제발 살아만 달라고 했다”(에스겔서 16:6). 그리고 전도자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희망이 있다. 비록 개라고 하더라도, 살아 있으면 죽은 사자보다 낫다”(전도 19:4)고 했습니다. 비록 나라 전체의 치부가 모조리 드러난 한 해였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음만 확인되면 희망이 있습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희망을 가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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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01-03 (Wed)
전대환 [2004-09-28 00:19]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