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글들은 대개 전대환의 저작물들입니다.
글을 사용하시려고 하는 경우 반드시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빨갱이' 동네 사람들
'빨갱이' 동네 사람들
2005-11-01 (Tue) 전대환 [2005-10-27 10:42]
전대환 꽃들에게 희망을
― 내 가슴에 남아 있는 평양 사람들 ―
전 대 환(구미YMCA 이사, 구미안디옥교회 목사)
‘공산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두드러기가 일어날 것 같은 분들이 이 글을 보면 ‘저 인간 빨갱이 아니야?’ 하고 몰아붙일지 모르지만, 죄송스럽게도 내 머리에는 빨갱이가 왜 무조건 ‘악’으로 취급 받아야 하는지 정리가 안 돼 있다. 교통사고가 나도 웬만해서는 한 쪽에 100% 과실 판정을 내리지 않는 세상인데, 빨갛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악’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수선하던 1980년 여름, 국방부에서 각 대학교의 학생 대표들을 불러 전방 체험을 시킨 일이 있다. 그 때 ‘북한의 실상’이란 비디오를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서울보다 먼저 생긴 평양의 지하철 구경을 한 것도 그렇지만,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북의 경제력이나 발전상이 남쪽보다 월등했다. 그러나 북의 군사시설은 대부분 방어용이고, 남에서도 대비를 잘 하고 있으므로 남침 위협은 별로 없다’는 교관의 말을 듣고는 속으로 ‘세상에!’를 외쳤다. 북에는 굶기를 밥 먹듯이 하면서도 전쟁에만 광분하는 ‘미친 놈’들만 사는 줄 알았으니까. 남침에 대비해서 국민의 기본권을 ‘유보’하고 살아야 한다며 겁주던 시절이 몇 달 전이 아니었던가.
공산주의는 악이고 자본주의는 선이라는 절대 이분법이 아직까지 신앙처럼 각인되어 있는 상황이라 이른바 ‘악’의 심장부로 들어가 본다는 것은 여간 기대되는 일이 아니었다. 단 이틀 방문으로 평양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게 좀 우습기는 하지만, 이틀 동안 보고 느낀 점은 이렇다.
1. 맑은 공기
가는 데마다 공기가 맑은 게 퍽 기분이 좋았다. 서해안을 거쳐 다다른 평양 하늘에는 시꺼멓고 뿌연 매연이 보이지 않았고, 맑은 공기를 거쳐 비행기가 땅으로 사뿐히 내려앉을 때, 마음까지 맑아지는 것 같았다. 평양 근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버스를 타고 고층빌딩이 즐비한 평양 도심을 다닐 때도 전혀 매연을 느낄 수 없었다.
2. 민족에 대한 자긍심
평양 시민들은 민족에 대한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관람석이 15만이나 되는 5.1 경기장에서, 연인원 10만 명이 90분 동안 장엄하게 진행하는 ‘아리랑’ 공연에서는 그들의 체제 홍보도 일부 없지는 않았으나, 큰 주제는 ‘민족’임을 볼 수 있었다. 자랑스러운 역사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역량을 만천하에 빛내자는 것이 공연의 메시지였다. 노동당원이나 시민들과의 대화에서도 그 점은 쉽게 엿볼 수 있었다.
3. 통일에 대한 염원
아리랑 공연을 보기 위해 우리가 경기장에 들어설 때 평양 시민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오랫동안 박수를 보냈고, 길거리의 시민들도 자유롭게 손을 흔들어 반겨 주었으며, 칠골교회 교우들 역시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음식점의 종업원들도 남쪽 손님들을 진심으로 친절하게 맞이해주었다. 통제된 사회에서 있음직한 어설픈 환영은 결코 아니었다. 만일 각본이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면 우리가 본 시민들은 전부 대단한 명배우들일 것이다. 그런 큰 환영은 통일에 대한 염원 없이는 나오기 어려운 것임을 함께 갔던 이들은 너나없이 느꼈으리라.
4. 융통성
상당히 경직돼 있을 것이라는 선입관과는 달리, 이번에 만난 평양 시민들은 상당한 융통성을 보여 주었다. ‘김일성이’ ‘김정일이’라는 표현이 우리 입에 배인 탓인지, 조심한다고 하면서도 무심코 그런 표현을 쓴 이들이 있었지만, 그런 말을 듣고도 안내원들이 못 들은 척 그냥 넘어가는 것을 몇 차례 보았다. 호텔 바에서 취기가 오른 어떤 사람이 큰소리로 “대한민국을 위하여!”를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잠깐 동안의 술렁임이나 긴장감도 없이 그대로 지나갔다. 만일 남쪽의 고급 호텔에서 북녘 사람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위하여!”라고 큰소리로 외쳤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평양 시민들은 통일을 열망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진심으로 환영해주었다. 25년 전에 ‘북한의 실상’을 보았을 때만큼의 충격은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평양에 다녀오면서, 우리는 뗄 수 없는 한 민족임을 새삼 느꼈다. 이번 방문이 통일의 물꼬를 트는 작은 물줄기가 되리라 믿는다.
■ 사진: 평양 소년학생궁전에서 만난 만경대중학교 2학년 김옥심(12살) 양. 아래는 일행 중 한 사람이 사인을 요청해서 받은 메모.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 2005.11.1 한국YMCA 전국연맹 소식지 〈꽃들에게 희망을〉에 실린 글입니다.)
저작권 ⓒ 이야기마을™, 1997~2014. 마을지기: 전대환. 모든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이 사이트의 이름 *'이야기마을'은 특허청에 등록된 서비스표입니다(제41-0179291호).
온라인 오프라인 출판 분야에서 이 사이트 외에서는 '이야기마을'이란 이름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사이트저작권]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2005-11-01 (Tue)
전대환 [2005-10-27 10:42]
;)
;)
[칼럼]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