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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나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그 때 나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1996-03-20 (Wed) 전대환 [2004-09-28 00:27]
전대환 내일신문
지금부터 100여 년 전, 영국에 별난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많은 시간을 노름꾼들과 술집 아가씨들, 그리고 범죄자들과 함께 지냈다. 감리교(監理敎) 목사였던 그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이들을 모아다가 함께 예배를 드리며 생활하다가 이들을 교회로 보내려고 하였지만, 기독교 사회인 영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교회에 갈 수 없었다. 당시의 교회는 잘난(?)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을 위해 모임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것이 구세군이다. 이 분이 구세군(救世軍)의 창시자 부쓰(William Booth, 1865~1912) 대장이다.
1912년, 죽음에 직면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기 여인들이 울고 있는 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저기 가야 합니다. 그 곳이 나의 전쟁터입니다. 저기 어두운 감옥이 보입니다. 청년 하나가 저 문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저리로 가야 합니다. 그 곳이 나의 전쟁터입니다....” 그러면서 실제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고 전해진다. 죽음에 직면한 보통 사람이 제 정신으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극한상황에 처할 때 사람은 가장 진실해질 수 있다고 한다. 오랜 시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깨어났을 때, 극히 위험한 순간, 배가 고파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울 때,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 또는 마라톤 선수가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한 후처럼 자기 기력을 다 소진했을 때, 사람의 본심이 나오게 돼 있다.
이와 같은 극한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과연 나의 입에서는 어떤 말이 튀어나올까? 그리고 나의 눈에는 어떤 모습이 보일 것인가? “억울하다!” “저 죽일 놈!” “아깝다!” “빨리 가서 일을 해야 하는데...”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이를 어쩌나...” “더러운 세상, 이제야 내가 없어질 수 있으니 속이 다 시원하다...” 혹시 이런 말들이 나오지는 않을지.
죽음에 직면해서 어떤 말을 남길 것인가 하는 것이 의식 가운데서 연습을 한다고 되는 일은 물론 아니다. 평상시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 왔는가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성인군자가 되라고 강요하는 것도 무리다. 또 모든 사람이 예수나 부쓰같은 사람이 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끝까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일이 있다. 곧 <진실>이다. 자기 자신을 향하여, 이웃을 향하여, 그리고 절대자를 향하여 진실하려고 애쓴다면 굳이 “저기 울고 있는 여인들이 보입니다... 감옥이 보입니다...” 하는 대사를 외울 필요는 없다. 그냥, “그래도 나는 열심히 살았다”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또는 다른 절대자를 부르며] 감사합니다” 하는 정도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도 저것도 아니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향하여 “잘 사시오!” 정도만 해도 그 사람은 괜찮은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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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03-20 (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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