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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홀아비 사부(師父)님이 있었다. 당돌한 제자가 느닷없는 제안을 했다. "선생님, 사모님 한 분 모셔 드릴까요? 우리 동네에서 수절(守節)하고 있는 그 청상과부(靑孀寡婦) 마님은 어떠신지요?"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했느니라." "아닙니다, 선생님. 그 분도 사람인데요... 한 번 시작해 볼 터이니 제가 하라는 대로 하십시오" 하고 단단히 여쭈었다.
이놈은 다음 날 아침 일찌감치 그 과부 집 문 앞에 가서 외쳤다. "선생님, 여기 계시옵니까?" 어리둥절해진 과부, "너희 선생님이 여기 오시다니?" "이상하다. 이 댁에 가신다던데..." 과부는 노발대발하여 소년을 쫓아냈다. 다음 날 아침, 또 찾아가서 "선생님, 여기 계십니까?" 하고 이웃 사람들이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외쳤다.
다음 날, "선생님, 내일 아침에는 제가 그 과부를 불러내어 저를 따라오게 할 터이니, 선생님께서는 담 밑에 앉아 계시다가 재빨리 부인의 안방으로 들어가 이불 밑에 누워 계십시오" 하고 작전 설명을 해드렸다.
다음 날 이른 아침, 과부댁 문 앞에서 또 큰 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어서 나오십시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부인은 빗자루를 들고 골목까지 쫓아 나왔다. 선생은 그 사이 부인의 안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쓰고 누웠다. 소년은 부인의 화를 돋구며 달리다가 슬며시 부인에게 손목을 잡혔다. 부인은 소년의 손목을 끌고 집 앞까지 왔다. "요놈아, 너의 선생이 어디 있는지 봐라." 어느 새 동네 사람들이 와아 몰려들었다. 소년이, "방에 들어가 볼까요?" 하니 부인이 문을 활짝 열어 젖히며, "이 봐라, 요놈아" 하는데, 이게 웬 일인가. 소년이 뒤쫓아 들어가 이불을 활짝 걷어 들치니 선생님은 화급히 옷을 주워 입고 나오며, "조놈 때문에 망신당했네..." 하면서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온 동네 사람들이 숙덕거리다가 입을 모아 말했다. "잘 됐네, 우린 이제 알았는데..." 수절 과부는 분하기도 하고 화도 났지만 그 지경에서 변명이 통할 리 없다. 소년은 벙글벙글, 미리 준비해 두었던 떡이랑 과일을 가져와 온 동네에 다 돌렸고, 그 날은 자연스럽게 혼인 잔칫날이 되었다.
그냥 웃어넘기기만 하기는 아까워서 느닷없이 옛날 이야기 한 자루를 소개했다. 짓궂은 제자와 좀 주책없는 듯한 사부님, 오늘날의 사제지간에서는 도무지 있음직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얼마나 인간답고 아름다운 사제지간인가.
이 이야기에는 사제지간의 깊은 신뢰관계가 스며들어 있다. 여기에는 험난한 전투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한 듯한 전우애와도 같은 믿음성이 있고, 샘이 날 정도로 끈끈한 정이 있다. 또한 여기에는 참 교육이 들어 있다. 교육이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지식을 주입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인생의 나눔'이라는 교육학자들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위의 이야기에서의 사부님과 제자는 인생의 나눔을 멋지게 실천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지엄(至嚴)한 스승의 모습에다가, 익살스럽게도 이와 같은 인간적인 모습을 더하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어린이날 선물과 어버이날 선물로 고민하다가 스승의 날 선물 때문에 걱정이 절정에 다다른 오월 중순이다. 스승의 날 선물을 정중한 편지와 함께 모조리 되돌려보낸다고 하는 어떤 교육기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것이 잘하는 일인지 삭막한 일인지 다시 고민에 젖어든다. 옛날에는 제자가 선생님 장가까지 보내 드렸다는데, 어찌하여 오늘날은 선생님께 드리는 손수건 한 장까지 되돌려 보내야 하는 세상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선물 고민보다는, 선생님과의 인간적인 에피소드가 많이 생겨나는 올 스승의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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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05-01 (Mon)
전대환 [2004-09-27 21:53]
[잡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