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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眞言)과 허언(虛言)
진언(眞言)과 허언(虛言)
2016-01-31 (Sun)
요한복음서 14:13-14
전대환
한울교회


[오디오파일 듣기/내려받기]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요한복음서 14:13-14>


■ 들어가는 이야기

오랜만에 구미에 눈이 많이 왔습니다. 일하시는 데에 또는 출퇴근하시는 데에 차질을 겪지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고생들은 좀 하셨겠습니다만 이번 겨울도 추울 만큼 추웠고, 눈도 올 만큼 왔으니까 겨울 구실은 제대로 한 셈입니다. 이제는 봄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집으로 모이신 여러분 위에 하늘의 은혜와 땅의 축복이 넘치도록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선과 위선에 대해서 생각했는데, 오늘은 진언(眞言)과 허언(虛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 소음(騷音)과 말

우리가 이런 말을 가끔 합니다. “말이면 다 말인 줄 아느냐?”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해서 다 말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세상에는 ‘소음에 지나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쓸데없는 말, 의미 없는 말, 위선적인 말, 사랑이 없는 말, 거짓말 등등입니다. 우리가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들으면 뭐라고 합니까? “헛말씀 하지 마세요!” 합니까? 그냥 ‘헛소리’ 하지 말라고 하지요. 말이 아니라 ‘소리’라는 것입니다. 좀 심한 표현을 쓰자면 ‘개소리’지요. 개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런 건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리라고 부르기도 오감합니다. 그냥 ‘소음’입니다. 잠언 26:23은 이렇게 말합니다. “악한 마음을 품고서 말만 매끄럽게 하는 입술은, 질그릇에다가 은을 살짝 입힌 것과 같다.” 생각 없는 말, 마음에 없는 말, 겉으로만 매끄럽게 하는 말은 ‘소음’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남을 비판할 수도 있고, 필요에 따라서는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판이나 비난 속에 사랑이 들어 있으면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는 애정이 없는 비판, 사랑이 없는 꾸지람, 아끼는 마음이 없는 나무람이지요. 이런 말들이 바로 ‘소음’이요, ‘쓰레기’입니다. 거짓말도 그렇습니다. 잠언 19:2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에게서 바랄 것은 성실이다. 거짓말쟁이가 되느니, 차라리 가난뱅이가 되는 것이 낫다.” 이런 ‘소음’들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잠깐 동안 사람들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금방 들통 나고 맙니다. 그런가 하면 정말 ‘말다운 말’이 있습니다. 잠언 16:24입니다.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을 즐겁게 하여 주고, 쑤시는 뼈를 낫게 하여 준다.” 말다운 말 한 마디가 고급술보다 낫고, 영양제나 진통제보다 낫습니다. 부모의 노고를 인정해주는 자녀들의 말 한 마디, 자녀에게 용기를 주는 부모의 격려 한 마디, 고독 속에 빠져 있는 친구에게 해주는 따뜻한 위로 한 마디…. 이런 말들은 값으로 따질 수 없이 소중합니다. 사람이 왜 결혼을 하고, 왜 자식을 낳고, 왜 친구를 사귀고, 왜 모임을 만듭니까? 그것은 ‘말다운 말’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마음에 감동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 말씀

사람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말을 하시는데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을 우리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말’과는 근본부터 다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생겨라!” 그러자 빛이 생겼습니다.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라!” 그러자 창공이 생겼습니다.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은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은 드러나라!” 그러자 땅이 생겼습니다.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여라. 씨를 맺는 식물과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가 그 종류대로 땅 위에서 돋아나게 하라!” 또 그렇게 되었습니다. “물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고, 새들은 땅 위 하늘 창공으로 날아다녀라!” 하시니까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물고기를 보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여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어라. 집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과 들짐승을 그 종류대로 내어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할 때, 어둠이 깊음 위에 있을 때, 물 위에 움직이고 계시던 하나님, 그분이 곧 ‘말씀’이신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육신이 되신 말씀, 이분이 곧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도 말씀으로 세상을 움직이셨습니다. “일어나라!” 하시자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눈을 떠라!” 하시자 맹인이 눈을 떴습니다. “네 죄가 사하여졌다!” 하시자 중풍병자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바다야, 바람아, 잔잔해져라!” 하시자 자연까지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건 ‘마술’이 아닙니다. 도깨비방망이 두들기듯,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하는 그런 종류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말씀이 실행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진화론이 옳은가, 창조론이 옳은가,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말이 씨가 된다!’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사람이든, 자연이든 다 그대로 실행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실행되는지 방법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어쨌든 실행됩니다.

■ 혼이 실린 말

그런데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이지요.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과 거의 동격의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겁니다(요한복음서 14:14).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하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우리의 ‘말’도, 말하는 대로 그대로 실행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까 말씀드렸지요? 말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소음, 둘째는 사람 사이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인 말, 그리고 셋째는 말한 대로 이루어지는 ‘말씀’입니다. 세상 지식에 오염이 덜 된 사람일수록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데, 그게 왜 그런가 하면, 말이 씨가 되어 현실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접(神接)한 사람들이 주문(呪文, spell)을 외는 일이 있지요. 이것을 다른 말로 진언(眞言)이라고 합니다(참말이란 뜻도 있지만 주문이란 뜻도 있습니다). 이건 힘이 있는 말입니다. 실현되는 말입니다. ‘너 죽어!’ 하면 사람이 발 앞에서 고꾸라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원시시대에는 이런 일이 허다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본성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사람의 말이 모두 진언이었고 그래서 불꽃이 열을 내듯 그들의 말에 물리적인 힘이 있었습니다. ― 이현주, ≪너희가 나를 알게 되리라≫(바오로딸, 1999), 62쪽.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거대한 나무를 베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톱과 같은 기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나무를 돌면서 “나무야, 죽어라! 나무야, 죽어라!” 하면 나무가 말라 죽어버린답니다. 문화의 때가 덜 묻은 사람들이기에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 맺는 이야기

우리는 왜 그게 안 될까요? 때가 묻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때를 벗겨내면 되겠지요. 어떻게 하면 때가 벗겨지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때를 벗겨내는 것, 그것이 회개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철저하게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면 여러분의 기도는 진언(眞言)이 됩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기도는 현실이 될 것입니다. 이런 기적이 여러분의 일상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2016.1.31 구미 한울교회 주일예배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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