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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피가

땅에서 피가

1994-04-08 (Fri)

전대환 [2004-09-28 01:57]

전대환

천리안 작가방

옛날 한 고울(郡)에 원님(郡守)이 부임하면 그날로 죽곤 하는 일이 일어났다. 부임하는 대로 첫날 밤에 시체로 변하는 것이었다. 몇 번이나 이런 일이 일어나곤 하니, 이젠 아무도 거기에 고을살이 하러 갈 사람이 없었다.
그 때 한 용감한 사람이 있어,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거늘, 무슨 요물(妖物)이 천명(天命)을 다치랴?”

하고는 자청(自請)하여 그 고을에 부임했다.

사방에 촛불을 켜고 새벽을 기다렸다. 이윽고 음산(陰散)한 기운이 돈다. 찬 바람이 쐐액 분다. 촛불이 다 꺼졌다. 희미한 빛 가운데 과연 요물(妖物)이 나타났다. 한 아낙네였다.

목에는 칼이 꽂힌 채 피를 흘리며 서 있었다. 손에는 흰 기(白旗)를 들었는데, 그 기폭(旗幅)에는 석 삼(三)자가 쓰여 있었다.

원님은 사생결단(死生決斷),

“이 요물이 감히 어느 안전(眼前)이라고...!”

하며 호통을 쳤다.

요물은 그냥 선 채 치(齒)를 떨고 울면서 하소연했다.

“저의 원한(怨恨)을 좀 풀어 주옵소서. 그 흉측(凶測한 일을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어 다만 손에 들고 왔나이다”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날이 새자 그 고울 두목(頭目)들은 원님의 시체를 염습(殮襲)하려고 청사로 몰려 왔다. 그런데 웬걸, 원님은 눈을 꿈쩍꿈쩍하며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왈(曰),

“이 고을에서 백기삼(白旗三)이란 자를 잡아 올려라.”

이에 잡아 족치니 백기삼이는 이실직고(以實直告)할 수밖에...

자기의 치정(癡情)을 거절하자 처녀를 뒷산 숲 속에 처 넣었다는 얘기였다.

원님이 시체를 찾게 해서 원혼(寃魂)을 달래고 법인을 처단했고 그 이후 고을은 태평연월(泰平年月)을 누렸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歸結)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억울한 사정은 사후(死後)에라도 밝혀지는 법이다. 구약성서(舊約聖書) 창세기(創世記)에도 이와 상통(相通)하는 이야기가 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인 후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동생의 행방을 물었을 때, 가인은 이렇게 말했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은 하도 같잖아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 이제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땅이 그 입을 벌려서, 너의 아우의 피를 너의 손에서 받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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