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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바디스 도미네?”
“쿠오바디스 도미네?”
1993-10-08 (Fri) 전대환 [2004-09-28 01:32]
전대환 천리안 작가방
“쿠오바디스 도미네?”
이것은 “주여, 어디로 가시옵니까?” 하는 뜻의 라틴어로, 베드로가 로마를 도망쳐 나오다가 자기 스승 예수의 음성을 듣고, 예수를 향해 했다고 전해지는 말이다.
당시 로마 당국은 극심하게 기독교를 박해하고 있었다. 기독교인들은 지하에 숨어들어 자신들의 종교의식을 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었다. 신도들은 베드로에게 간청했다.
“베드로 사도님, 여기는 위험합니다. 사도님이라도 이 곳을 떠나 목숨을 보존하셔야 예수 그리스도의 맥을 이어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베드로는 밤을 틈타 로마를 빠져나오는 길인 것이다. 동틀 무렵 베드로는 예수의 음성을 들었다.
“베드로야, 네가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이냐? 너마저 이 도성 로마를 떠난다면 내가 다시 로마로 갈 수밖에 없구나. 저들을 구원하려면 내가 거기서 다시 십자가에 못박혀야만 한다.”
이 때 베드로는 충격을 받는다. 과거,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 날, 예수의 예언대로 하찮은 여종 앞에서 스승 예수를 세 번이나 식은 죽 먹듯이 부인해버린 경험도 있는 터라, 그 때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배반 이후, 지금까지는 예수를 위해 충성해 왔는데, 이제 와서 다시 예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로마로 방향을 틀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전한다. 자기같이 천한 몸이 어찌 스승과 같은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릴 수 있겠는가 해서란다.
어떤 종교가 새로운 땅에 정착하려면 박해의 극복이 필수적인 모양이다. 천주교가 조선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는 단지 ‘서학’(西學)이려니 해서 그렇게 억압을 받지 않았지만, 조상에 대한 제사 문제 등 하나하나 이질감이 엿보이고, 국가적인 해독을 끼치는 무리들이라는 인상을 주게 되어 날이 갈수록 박해가 심해졌다.
1785년, 이승훈(李承薰)이 중국 북경에 가서, 조선인으로서는 최초로 세례를 받고 돌아온 후 서울에서는 10여 명의 신자들이 모이는 비공식적 교회가 설립되었다. 약 10년 후인 1794년에는 조선의 천주교인(天主敎人) 신자가 4천 명에 이르렀고, 중국인 주문모 신부(神父)가 밀입국(密入國)하여 활발한 물밑 전교(傳敎) 활동을 폈다. 그 이후 5-6년에 걸쳐 조선 조정의 천주교 박해는 점차 가속화되었고, 1801년에는 이른바 신유교난(申酉敎難)이라 하여 수많은 신도들이 모진 고문과 죽음을 당해야 했다.
박해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주문모 신부는 신도들의 철저한 보안(保安)과 함구(緘口) 덕에 피해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주 신부를 찾기 위한 박해와 고문이 심화됨에 따라, 이리 저리 거쳐를 옮기던 주신부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게 되었다. 조선말에 서툴러 벙어리 행세를 하며 정처없이 걷던 중 발길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북쪽으로 옮겨져 이레 후에는 황해도 황주 땅까지 닿았다. 거기서 그는 신자들이 굴비처럼 엮여진 채 자기 때문에 모진 고초를 겪는 모양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주문모 신부는 발길을 한양으로 되돌렸다. 여태까지 신자들은 조선의 복음 전파를 위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주신부는 보호해야 한다는 각오로 힘겨운 고문을 참으며 죽음까지 마다하지 않았었고, 주신부 역시 교우들의 강권(强勸)에 못이겨 피신의 길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신부는 죽음을 결심하고 스스로 의금부에 모습을 드러내 결국 효수형(梟首刑)을 당했다.
로마를 도망치다가 주님을 만나 “쿠오 바디스 도미네?” 하며 놀란 베드로가 다시 로마로 되돌아가 순교한 것처럼, 주문모 신부는 이국 땅 조선의 신도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순교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주 신부가 살아서 했음직한 일보다 더 큰 선교(宣敎)의 기적이 그의 죽음 후에 일어났다. 실로 그는 한 알의 밀알이었다(요한복음서 12:24 참조).
베드로의 순교는 기독교를 로마에 뿌리내리게 해서,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하게 하였고, 주문모 신부의 순교는 천주교를 조선에 뿌리내리게 했다. 물론 <황사영의 백서> 사건 등 부끄러운 역사도 없지 않으나, 천주교로부터 자리잡기 시작한 기독교는 그 나름대로 이 땅에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정착시킨다는 것, 거기에는 희생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는 사람이 영광을 보려 한다면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씨앗이 되려는 사람은 철저히 죽어야 한다. 그래야만 거기서 많은 열매가 맺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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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0-08 (Fri)
전대환 [2004-09-28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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